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칼도의 저주 (문단 편집) == 2009시즌 == [[파일:external/www.fifakorea.net/SK004_20090304_240101.jpg]] 미드필더를 영입하며 두 번이나 실패를 맛본 서울은 이번에는 수비수를 영입했다. 프랑스 국적의 [[케빈 하치]]. 거창하게 선전했다 또 피보기 싫었는지 조용히 영입된 케빈은 그런대로 서울에 잘 녹아들어가는가 싶었다. 그러나 시즌 개막전에서 [[전남 드래곤즈]] 6:1로 탈탈 털면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었던 서울의 다음 상대는 그 해 처음 창단된 [[강원 FC]]였다. 괴물 공격수 [[김영후]]를 앞세운 강원은 원정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밀리지 않고 치열하게 맞불을 놓았다. 그리고 0:0으로 팽팽하게 맞섰던 전반 39분,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. 코너킥 상황에서 강원 선수가 헤딩슛을 하자, 케빈이 그대로 '''날아가서 펀칭해 버린 것이었다.''' [[파일:/pds/201011/01/87/c0027987_4cce88ae53ee8.jpg]] 어안이 벙벙해진 심판은 바로 레드카드를 꺼냈고, 케빈은 쓸쓸히 [[나 홀로 집에|나 홀로 락커룸에]]를 찍으러 들어가 버렸다. '''실점 위기도 아닌데 왜 손을 썼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다.''' 서울은 08년 [[이청용]], 구경현이 핸들링으로 퇴장당한데 09년 케빈이 화려한 핸들링 반칙을 선보이며 '''축구장에서 배구한다'''는 비아냥을 들으며 개망신을 당했다. 그래도 케빈의 플레이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. 수비는 그냥저냥 무난한 수준이었지만 [[센터백]]은 물론 오른쪽 [[풀백(축구)|풀백]]까지 소화할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라 유리몸 [[이종민(1983)|이종민]]과 [[안태은]]이라는 그 해 리그 최악의 오른쪽 풀백 외에는 자원이 없던[* 특히 안태은은 시즌 내내 팀의 구멍으로 삽을 푸다가 09시즌 종료 후 [[최효진]]과 트레이드되어 [[포항 스틸러스]]로 떠났다.] 서울의 측면에 보탬이 되었다. 하지만 '''펀칭의 임펙트가 컸던데다''' 당시 야심차게 전관왕을 노리던 서울은 무난한 정도로는 [[K리그]]와 ACL을 모두 잡기 힘들 것이란 판단에 케빈을 집으로 보냈다. 11경기를 뛴 것이 K리그 커리어의 전부였다. [[파일:/pds/201011/01/87/c0027987_4cce88b3e149b.jpg|width=300]] 뒤를 이어 서울을 찾은 선수는 브라질 출신인 192cm의 장신 스트라이커 [[안데르송 히카르두 두스 산투스|안데르손]]이었다. 터키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안데르손은 초반부터 연속골을 뽑아내면서 서울의 새로운 공격자원으로 자리매김 하는 듯 했다. 그러나 이번에는 팀 전술이 문제였다. 다이렉트한 패스 플레이 위주였던 서울의 공격 전술은 전방에 위치한 안데르손의 장신을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를 거의 보여주지 못했고 안데르손은 얼마 안 가 전방에 홀로 고립되는 일이 많아졌다. 이렇듯 공격 루트 다변화에 실패한 서울은 결국 무관으로 시즌을 접어야 했다. 3경기 연속골을 넣으면서 팀에게 승점을 안겨주긴 했지만, 서울과는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이질적인 팀 컬러를 보이며 녹아들지 못한 안데르손도 귀네슈 감독과 함께 서울을 떠나야 했다. 그가 K리그에 남긴 기록은 13경기 4골 1도움. 그래도 이 둘은 앞에 둘에 비하면 그럭저럭 밥값은 해줬다는 평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